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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좌절 끝에 이름으로 찾은 내 가정의 행복
제목 :  좌절 끝에 이름으로 찾은 내 가정의 행복
작성자 : 관리자 / 2016-09-01 오전 12:09:17

세상살이 살아가다 보면 기쁜 일, 슬픈 일, 그리고 살면서 겪어야 하는 굽이굽이 산등성 같은 가파른 길들이 자신도 모르게 옆에 붙어서 인생살이에 동행을 하며 살아가나 보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살아 온 길 뒤돌아보니 참으로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은 다녀온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 30년 속에 내 젊은 청춘 다 보내고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은 젊은 날에 대한 보상금인가 생각하니 서글픔이 앞서고….
  바깥으로 나돌아다니던 사람이라 그런지 한 달도 못 견디고 퇴직금에 은행융자에 가진 돈 몽땅 끌어모아 사업이란 것을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처음은 그런 대로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너무 믿어서인지 직원에게 배신을 당하는 아픔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2002년 8월 ‘루사’ 태풍으로 수해를 당하여 전 재산을 물속에 담가놓고 망연자실로 정신을 놓았던 일들, 피붙이인 여동생에게 보증을 서주었다가 그 부채를 모두 책임져야 한 일…. 참으로 참고 견디기 힘든 일들 앞에 죽음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식들 얼굴이었습니다. 행여나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수해를 입은 사람들과 백방으로 다녔지만 보상은커녕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긴급자금대출이었습니다. 그 대출도 마음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보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누가 나에게 보증을 서 줄 것인가….
  피붙이인 동생마저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 행방을 감추었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면 어떨 때는 숨쉬기마저도 답답하여 나도 모르게 쓰러질 때가 있었습니다. 코앞에서 글썽이는 눈망울로 내려다보며 “엄마, 아프지 마세요” 라며 훌쩍이는 자식들 때문에 죽음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인명은 제천이라’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 목숨이라면 다시 한 번 살아보자고 마음먹었기에 오늘의 내가 자신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빚쟁이한테 그만 시달리고 하나씩 정리하자는 생각으로 남편과 상의하여 가진 것 모두를 처분하고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조그마한 자영업 하나에 의식주를 맡기기로 했습니다. 몇 년간 꿈을 담고 남아있는 인생에 투자하며 열심히 땀 흘리던 곳을 아쉬움과 함께 뒤돌아 나올 때 그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이제는 무얼 하며 살아야 하나 생각할 때 친구의 소개로 한글음파이름학회를 만나게 되었고 박사님께 상담을 받아보니 우리 가족들이 살아온 지난날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이름의 음파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박사님의 상담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서 가족들의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이 나를 또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반발심도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배짱이었습니다. 박사님께서 하라는 대로 우리 가족들은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이고 녹음하여 듣고 100%의 효과를 기대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뭉쳤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과 상담하면서 나도 한글음파이름학을 한 번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등록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한 달 보름 후 우리 가정에는 정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이 한국인들은 정말 어렵다는 승진을 하였고 몇 달 후에는 직장의 우수 직원으로 뽑혀 한국인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주장이 강하여 직장생활을 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딸아이가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고 출근할 때마다 짜증을 부리며 마치 회사에 끌려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이제는 직원들과 화합 속에 생활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한글음파이름학을 공부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인데 남편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30년 세월 살아오는 동안 나로 인해 얼마나 가슴앓이를 많이 했을까 생각하며 반성을 해봅니다.
  예전에 이 공부를 하지 않고 이름도 바꾸지 않았을 때에는 우리 부부도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잉꼬부부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가식일 뿐 헤어지는(이혼) 길목에 몇 번을 마주서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당하였고 그 상처는 남편이 받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가정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참으며 노력하였기에 오늘날 우리 가정이 웃음꽃이 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이름의 변화가 이렇게 엄청나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첫째는 남편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도 도와주지 않던 사람이 요즘은 스스로 집안의 작은 일들을 많이 도와주며 뒤늦게 공부하고 있는 나를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한글음파이름 공부로 성격 특성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새 이름으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가슴 아팠던 지난날들을 마치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매일 매일 변화되어가는 우리 가정을 보며 우리 가족들은 새로이 선물 받은 귀한 이름으로 남은 인생을 책임 있게 살아가려 합니다.
  끝으로 한글음파이름 공부를 마치고 이제는 NDS상담원으로서 나쁜 에너지의 음파를 담고 있는 이름으로 인하여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상담할 것이며 좋은 이름의 음파가 뿜어내는 좋은 에너지를 한껏 받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앞장설 것입니다. 한글음파이름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박사님,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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