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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음파이름학을 연구하게 만든 한효섭 박사의 과거이야기
제목 :  한글음파이름학을 연구하게 만든 한효섭 박사의 과거이야기
작성자 : 관리자 / 2016-10-08 오후 12:48:09

안녕하세요. 한글음파이름학회 조서목 원장입니다.

오늘은 한글음파이름학회 총재님이신 한효섭 박사의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합니다.

한글음파이름학을 연구하게 만든 과거이야기

나는 부산 동구 범일동 산복도로 골짜기에서 2대 독자로태어나 6. 25 전쟁으로 인한 수용소의 애환을 보고 겪으며 토담집과 판자촌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피난민의 참혹한 삶을 지켜보면서 고독하게 성장하였다.

나는 비를 특히 좋아하였기에 2대 외동으로 귀하게 태어난 아들이었지만 왠지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여 외로움과 공상 속에 미래를 생각하면서 비를 맞고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ㄹ”발음이 잘 되지 않아 1953년경부터 언어교정을 하기 위하여 소리(말), 웅변, 스피치를 배우고 연습하는 도중에 소리(발성)가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음파이름의 기초가 되는 참소리이론을 연구발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중학교 1학년 5월경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부산 동구 범일동 교통부에서 산복도로 아리랑 고개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장대 같은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낙비를 맞으며 100m가량 걸으니 목욕탕 건너 편 학산여관 앞 땅바닥에서 사주, 관상, 수상, 성명을 보는 책을 펴놓고 비를 맞고 있는 역술인을 보게 되었다. 비에 홀딱 젖은 아저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비를 맞고 있는 연유가 궁금하여졌다.

그 때 그는 집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학생, 학생” 하고 부르며 오라고 불렀다.

한참 감수성이 풍부하고 민감한 어린나이에다 역술을 미신이라 경시하고 과학적 사고를 가진 나였기에 그의 부름을 무시하고 집으로 가다 문득 비를 맞고 있는 그에게 호기심이 생겨 “아저씨, 왜 불러요?”하니 “학생, 여기 앉아요. 관상과 손금과 성명을 봐 줄께”하더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는데 너무나 맞았다.

특히 그는 수상을 잘 보았는데 동양수상은 손바닥을 주로 보고 서양수상은 손등을 본다고 하면서 손금을 보아주었다. 그리고 나의 성격과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설명해 주는 데 신기하게 잘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설명을 듣다가 “아저씨 왜 그런데요?”하고 반문하자 손금을 설명하면서 이 선은 운명선이고 이 선은 생명선이며, 이 선은 감정선 인데 이 선이 이러면 이렇고 저러면 저렇다하면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관상이 이렇게 생기면 어떻고 저렇게 생기면 저렇다. 성명은 음양오행, 음령오행, 수리는 이렇다하면서 한참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약간 취기가 있어 보였던 그와 오랫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비를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대부분 맞는 것 같았지만 나보고 조실부모했는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 아마 계모 밑에 자란다는 말은 잘못된 것으로 여겨졌다.

 

몇 시간동안 설명을 듣고 나니 돈을 달라고 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던 차에 나는 “아저씨 다 틀렸어요, 우리 어머니 살아 계세요”하고 일어나 집으로 뛰어왔다.

나는 우리 집에서 100m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시는 고모집을 찾아가 고모에게 다짜고짜 “지금 어머니 계모이지요? 친어머니는 어디 계십니까?”하고 다그쳐 묻자 누가 그러던데 하더니 곧 아니라고 처음에는 부인하시더니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냐고 말하면서 친어머니는 한살 때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나는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냈으며 인수대비의 아버지이자 성종임금의 외조부이신 양절공파 한학선조의 18대 현손이며 선조임금 때 관찰사 및 우의정을 지내신 한응인 선조의 12대 현손이고 영조임금 때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내신 한익모 선조의 6대 현손이며 문종임금 때 영의정을 지낸 한용구의 현손자이다.

한일합방, 3?1운동의 혼란 속에 증조부는 가난한 선비로 일생을 지냈으며 조부님은 일제의 지식인 탄압정책으로 인하여 농부로 지내셨고 부모마저 일제의 압박으로 고통을 받고 근로자로 지내시며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을 하시다 고생과 고난으로 병마에 시달리다 1964년 10월 3일에 48세의 아까운 나이로 운명하셨다.

나는 명문가에서 12개월 만에 태어났다고 하여 12삭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위에서 부러워했던 명문가문에서 자랐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어머님의 죽음을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여 더욱 외롭고 고독한 시절을 보내면서 관상, 수상, 성명, 사주팔자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에 관계되는 책을 사서 탐독하고 연구하였으며 역술간판이 보이면 찾아다니면서 상담하고 토론하며 공부하고 연구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역술분야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운명을 보아주면 너무나 잘 맞다고 신동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 10월 3일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 때 학업을 중단해야했고 가정이 기울기 시작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하였지만 필자는 15일간 쌀 구경 못하고 수제비로 연명하였고 영세민에게 국토개발이란 명목으로 15일간 노동을 하게 되면 밀가루를 한포대씩 주는데 필자는 거기에서 노동을 하면서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관상과 손금을 보아드렸는데 신통하게 잘 맞는다고 필자의 일까지 아주머니들이 대신해 주기도 했다.

나는 1981년 한국역술인협회 부산지부, 한국역리학회 부산지부 상임고문을 맡았으며 역술인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분야에 최고의 경지까지 올랐다.

성명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는데 역술은 단지 선천적 조건으로 이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변할 수 없으며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했으나 나는 사람이란 선천적 조건으로 태어나 후천적 변화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다.

행복과 성공을 주도하는 것은 선천적 조건인 운명이 아니다. 어떤 교육을 받느냐, 어떤 환경에 자라느냐 하는 후천적 변화에 달려 있으며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관계없이 불려지는 것이 이름이고 남이 대신 불러줄 수 있는 것이 이름이며 부르는 이름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행해지므로 이름에서 나오는 음파에너지 즉 NDS에너지가 인간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대 노인대학학장, 중ㆍ고등학교 교장, 30대 국회의원, 대학교수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승승장구하는 바람에 음파이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를 연구하고 실천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괜찮겠지 하는 바램과 안이한 생각과 나는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만과 교만 때문에 내 이름은 음파이름으로 개명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래식성명학으로는 최고최상이라는 나의 예전이름은 정확하게 40을 넘기면서 최악 의 불행과 고통과 시련을 주었다. 나는 옥고를 치루는 수난을 당해 음해와 중상모략을 받고 재산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한효섭으로 이름을 바꾸고 가족의 이름을 음파이름으로 바꾸어 불렀다.

그러면서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통해 수만명을 임상 실험하였고 음파이름을 과학적으로 학술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전념하게된지 18년만에, 그리고 음파이름과 인연을 맺은지 57년만에 한글음파이름학은 학문적 체계를 갖추어 "한글원리이론, 한글이름이론, 음파에너지이론, 칼 융의 분석심리학이론, 참소리이론, NDS수비학이론, 음파수이론"에 근거를 두고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음파에너지 이론을 집대성하여 한글음파이름학이란 학문과 NDS상담심리이론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 좋은음파 좋은이름의 신비"책

여러분 음파는 희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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