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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음파이름학의 태동과 변천(2)
제목 :  한글음파이름학의 태동과 변천(2)
작성자 : 관리자 / 2016-10-10 오전 10:28:43

안녕하세요. 한글음파이름학회 조서목 원장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한글음파이름학의 태동과 변천'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한효섭 총재님의 이야기를 통해 한글음파이름학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 1963년 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가난으로 신문배달과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고학의 길을 걸었으며 쌀은 구경조차 힘든 시기였으므로 한달 동안을 수제비로 연명해야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국토개발사업이 한창이라 국토개발에 참여하면 밀가루를 주었다. 그걸 얻어다가 연명해야 했는데 그는 국토개발현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손금과 이름을 봐주고, 아주머니들이 그의 일을 대신해 주어서 일을 하지 않아도 밀가루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때 그의 실력이 대단하여 '총각도사', '신동'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4년고등학교 3학년 10월 3일 개천절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년상을 지내야 하는 가풍에 따라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1년상을 지내는 동안 1965년한얼민족연구회장, 한얼민족청년회, 부산범일초등학교 총동창회, 한국불교법우회장, 대한웅변인협회부산지부장, 한국웅변학회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사회활동을 하였다.

그 후 서울로 상경하여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참새불고기장사, 구두닦이, 가정교사, 빠웨이터 등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 고학을 하였고 그 당시 최대의 역술가인 종로3가 백운학을 만나 관상을 보았다. 백운학은 그에게 ‘주일무적’이라는 글을 적어주었다. 그는 전국 유명한 역술가와 서울 내자동에 김봉수 성명학자를 비롯하여 전국 유명한 성명학자들을 만나 역술과 성명에 관한 심도있는 연구를 하였고 그의 열정을 쏟았다.

그는 역술과 성명에 대한 연구를 하면 할수록 역술과 재래식 성명으로서는 삶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1966년 그는 대학 재학 중 서울 삼양동에 한효섭변론연구원을 설립하여 이름, 소리(말), 한글연구, 스피치, 웅변 등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말의 중요성과 소리의 중요성, 음파가 성격을 변화시키고 이름대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타고난 운명보다 이름에 따라 삶이 다르고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여기게 되어 이른바 이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며 역술 중에서도 관상, 수상, 역리, 사주팔자보다 후천운을 좌우하는 이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 중에도 재래식 성명보다 소리에서 발산하는 음파에너지로 지은 음파이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당시 재래식 성명이 너무나 알려져 있고 음파에너지는 생소하였으며 과학적 검증도 부족한 상태였다. 그 당시 그는 재래식 성명에는 상당한 경지에 올랐으므로 그 당시 흐름에 따라 재래식 성명을 선택하여 호적상의 한정우(韓正佑)라는 이름을 재래식 성명으로 최고최상의 이름으로 개명하여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 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 그는 1970년 24세로 한얼재건중고등학교와 한얼노인대학을 설립하여 총각교장과 한얼노인대학장을 역임하였으며 제자들의 성원에 총각교장으로서 나이 많은 제자들의 주례를 쓰기 시작하여 25세부터 45세까지 천 번의 주례를 섰다고 하며 하루에 8번의 주례를 선 적도 있으며 심지어는 정월초하루는 물론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날까지 주례를 서기도 하였으며 그의 20대에서 40대까지 청년시절 공휴일의 추억은 주례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1977년 30세 최연소자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고 또한 1978년 31세로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여 전국에서 최연소 가득률 전국 1위로 당선되기도 하였다.

♣ 그는 JC, 라이온스, 로타리, 사회단체 활동 등으로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한국 최초의 무료노인대학을 설립하고 무료골목유치원,새마음유치원 등을 설립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봉사자로서, 선각자로서 존경받는 명사로서 명성이 높았다.

 

♣ 1981년에 그는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역술인협회, 한국역리학회 부산지부 상임고문을 맡았으며 역술인과 성명학자로 명성이 높았으나 역술과 성명으로써는 미래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에 심리학과 물리학,수비학,음파학,상담심리학,심리검사등을 공부하고 연구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음파이름의 중요성을 느꼈다.

♣ 1985년 30대 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서울에 갔을 때 정동MBC방송국 옆에서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어느 할머니 역술인을 만났다. 그 할머니가 재래식 이름을 빨리 바꾸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웅집 등 몇개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가 연구한 음파이름의 중요성과 같아서 음파의 중요성을 느끼면서도 한창 승승장구하였으므로 85%의 신뢰도와 정확도가 있다면 그는 15%에 속하겠지하고 자신은 극복할 수 있다고 자만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서 3편에서 계속됩니다.

                                                                                                                   - 한글음파이름학 책에서 -

여러분 음파는 희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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