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칼융의 분석심리학이론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karl ?g?staf ?j?ŋ], 1875년 7월 26일-1961년 6월 6일)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 바젤 대학교와 취리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의 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의 연구를 응용해 심리학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이전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 검사를 응용하면서 자극어에 대한 단어연상을 연구하였다. 이 연상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학계에서 자주 금기시 되고는 하였다. 그는 특정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에 관련된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 연구를 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의 성욕중심설을 비판하고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수립하였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심리치료법을 개발하여 이론화하였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개체화' 라는 자신의 신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더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ETH Zurich)의 심리학 교수, 바젤 대학교의 의학심리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칼 융은 우주의 소리, 즉 마음의 소리 염파를 분석심리학이론과 심리학적 유형으로 음과 양을 에너지 경향으로, 내향과 외향으로,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류했습니다. 그것을 한글소리로 재디자인한 것이 한글음파이름학입니다.
분석심리학은 다른 경험심리학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심리학설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분석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속에 무엇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거기서 얻은 사실을 바탕으로 각 개인의 의지와 의욕의 방향을 살펴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나 - 자아’가 있습니다. ‘나’의 둘레에는 의식이 있습니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 나의 생각, 내 마음, 내 느낌, 나의 이념, 나의 과거, 내가 아는 이 세계 무엇이든 자아를 통해 연상되는 정신적인 내용은 의식입니다. 나는 이 의식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내가 아는 세계가 의식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아직 모르는 정신세계를 무의식이라 부릅니다. 자아에 속하지 않으며 자아와 아직 연관되지 않고 있는 모든 심리적 내용들을 통틀어서 무의식이라 부릅니다. 무의식이란 아직 의식되지 않는 정신세계로서 자아의 통제 밖에 있는 미지의 정신세계를 말합니다.
무의식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의식은 자그마한 섬과 같습니다. 의식은 우리 정신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으며 그것은 주위 자그마한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아란 그 자그마한 일부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이란 자아에 대한 심리적 내용의 관계를 유지하는 기능이며 활용입니다. 의식이란 마치 피부와 같은 표면입니다. 그 밑에 끝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볍게 무의식이라 부르지만 무의식이 얼마만큼 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의식이 무의식에 비길 데 없이 작다고 해서 의식의 기능을 무시하고 비평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아가 없으면 인간정신의 성숙도 불가능하고 개성화도 불가능합니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려면 자아가 있고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의식에 비해 무의식은 작은 섬을 둘러싼 대양과 같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식은 작은 섬처럼 가만히 있는 실체가 아니고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무한히 큽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식도 커지며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함으로써 의식은 그 시야를 넓혀갑니다.
무의식은 ‘혹’이 아니고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며 창조적 가능성을 지닌 것입니다. 체험하며 의식의 것으로 동화해야 할 것들입니다. 무의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율성입니다. 우리가 잠잘 때 계속해서 기능을 발휘하는 식물성 신경기능(자율신경)처럼 무의식은 의식작용에 구애받듯이 그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은 의식작용보다 더 항구적이며 때로는 그를 능가하는 특징을 가진 것이라고 봅니다. 무의식의 의식에 대한 관계는 대상적입니다. 무의식은 의식에 결여된 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그럼으로써 2개체의 정신적인 통합을 꾀합니다. 의식이 지적이면 무의식은 정적이며 의식은 외향적이고 무의식은 내향적 경향을 띄게 됩니다.
선호하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다르며 선천적으로 이미 타고나는 인간은 누구나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성격은 각 개인이 것입니다.
음파이름을 통하여 의식과 무의식을 찾아내고 개인의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즉 나쁜음파이름을 좋은음파이름으로 변화시키면 잠재하고 있는 무의식은 물론 의식까지도 나쁜 에너지를 좋은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