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순을 넘긴 어머니에게 드린 최고의 선물 ☆
윤**
나의 어머니는 명랑하고 쾌활한 외향적 성격에
주위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사람으로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는 꿈 많은 소녀였습니다.
자신을 따라다니던 총각들을 뿌리치고 남자답고 근엄한 아버지의 매력에 결혼하였으나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의 괴팍한 성격에
끼 많은 어머니의 꿈은 산산이 조각나고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고
아버지 그늘에서 뒷바라지로 일생을 보내신 분입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생계를 꾸려오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못하고 묵묵히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는 과거 한국의 여인상입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아버지에게 대꾸 한마디 못하고 가슴 졸이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우며 가끔 어머니의 한숨과 후회의 눈빛이
그동안의 삶과 어머니의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60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그 긴 세월 동안에도
꺾이지 않은 쾌활함으로 주위로부터 인기가 많으며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는 사교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도
우리집 청소부터 외손자 챙기기까지 빈틈이 없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시집간 나의 집안일과
외손자 뒷바라지는 물론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이 잘되기를 기대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농구선수로 서울에 발탁되어 가서 중앙대 농구부에 있다 결혼한
50세 중반인 아들 걱정에 앉으나 서나 걱정이 끝이 없었습니다.
딸들에게 받은 용돈은 모아서 외손자와 아들에게 다 내놓았고
평생동안 희생만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어머니가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를 바라는 마지막 방법으로
어머니께 좋은 아호를 지어 선물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호를 부르게 하고 녹음기에 틀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아호를 선물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어머니에게 엄청난 변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잔소리와 가시 돋친 말을 들으면 안으로 삭이며 가슴 아파하던 어머니가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나의 집안일을 깔끔하게 대신 해주시던 분이
이제는 대충대충하고 한 번씩은 빠지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외손자 학원 가는 것도 한 번도 늦거나 잊은 적이 없는데
가끔 늦게 보내기도 합니다. 어쨌든 예전처럼 안달복달하지 않고 편안하고
너그러우며 여유가 있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특히 부모 곁을 떠나 서울 갔던 오빠가 40여년 만에 부산으로 이사오는데
어머니는 모른 체하셨고 그래서 이사오기 전에 오빠집 청소는 언니가 해야 했으며
어머니는 이사오는 날도 가보지 않으셨습니다.
평생을 자신의 존재는 없었고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시던,
한편으로는 후회스러워하기도 했던 모습이 이제는 사라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행복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얘야, 이름을 바꾸고 나니 마음이 편하고 돈이 모인다” 하며
내 손을 잡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흔히 딸에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고 딸은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하는 말을 합니다.
어머니는 인생의 황혼에 마지막으로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글음파이름의 위대한 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받았던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 한글음파이름으로 지은 자신의 아호라고 말합니다.
좋은 기념일이나 생일 또는 환갑 등에 부모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건강음파와 행복음파에너지가 발산하는 아호를 선물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