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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에 비친 총재 한효섭 박사


음파이름으로 불행한 삶을 행복한 삶으로 바꾼 한효섭 이야기 연합뉴스 | 2010.07.12
제목 :  음파이름으로 불행한 삶을 행복한 삶으로 바꾼 한효섭 이야기 연합뉴스 | 2010.07.12
작성자 : 관리자 / 2012-05-01

12) 음파이름으로 불행한 삶을 행복한 삶으로 바꾼 한효섭 이야기

 

 

음파이름으로 불행한 삶을 행복한 삶으로 바꾼 한효섭 이야기

연합뉴스 | 2010.07.12 14:58

 

한글음파이름학, 현대인의 꿈과 사랑을 이룰 과학의 이름학임을 스스로 입증

 

그에게 남은 게 없었다. 빈 손 그 자체. 하지만 지금 그는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을 거의 이뤄냈다. 물론 원했던 것이 화해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숭고한 정신의 가치였기에 가능했다. 그의 지난날 군데군데 더러는 화려했던 구석도 있지만 고통과 역경의 가시밭길이었다. 한데 그의 현재는 찬란하며 눈부시다. 그는 누구인가. 현 부성고등학교 설립자 한효섭 박사.

 

24세의 젊은 나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전부를 오로지 교육 사업에 투자하고 스스로 헌신하였다. 무료 노인대학(현, 한얼노인대학), 한얼재건학교 중고등부(현 부성고등학교), 무료골목유치원, 한얼웅변예술학원(현, 한글음파이름학회 평생교육원/ NDS평생교육원)을 설립하여, 불우청소년, 불우노인교육에서부터 서민, 유아교육, 사회교육 등 그야말로 교걋? 통한 사랑 실천에 매진하였다. 이 길은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란 건학 이념에 일찌감치 잘 집약되어 있기도 했다.

 
 

교육을 통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올곧은 길은 현재 부성고등학교 역사 속에 점철되어 있기도 하다. 24세의 젊은 나이 부모님의 유산 전부를 바치다시피 한 한얼재건학교 중, 고등부 가운데 고등부가 세화여자실업학교로 발전한다. 한때 학급수 81개, 학생수 4,860명, 말 그대로 전국최대의 불우청소년 전수학교로 발돋움하였다. 그의 꿈이 현실화한 듯하였다. 학교경영을 교장, 교사들에게 일임하여 자율로 운영하기로 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1990년대에 이르러 사정이 급변하였다. 불우청소년학교인 세화여실의 경우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주경야독 또는 주독야경하는 식으로 밤낮 구분 없이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하는 어려운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다가 국가 경제가 나아지고, 한 집에 한두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자연 야간학급은 유지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되자 자율경영에 맡겨졌던 학교경영이 어려움을 더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야간변태수업(주간반을 야간반인 것처럼 허위로 꾸며 만듬) 서류를 만들어 교육청에 허위보고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결국 주야간, 과목간 교사들 입장 차이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한효섭이사장은 자율에 맡긴 채 좌시할 수가 없었다. 교직원의 생존권과 화합을 위해 주간 36학급의 고등학교개편 설립안을 부산광역시 교육청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은 주간 24학급 인가의 방안만을 확고히 하였다. 이렇게 되면 교원들 중 60%가 퇴출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신분 불안을 느낀 교사들이 교협교사(전교조 전신)를 결성하여 온갖 루머를 퍼뜨리며 강경일변도 투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그래도 일부 용인될 수도 있었겠지만 사태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학생선동 농성, 학교재단 비리운운, 심지어 한효섭이사장과 법인과장 감금 협박, 법인직인과 이사장 도장을 탈취하여 허위서류 조작, 허위 과장성 언론 보도 등등. 교협교사(전교조 전신)들은 이에 머물지 않고 허위성 서류로 문현여자상업고등학교(현 부성고등학교) 인가를 얻어냈고, 이전의 세화여상은 관선이사에 의해 폐교당해야 했다. 이는 교협교사들의 과장과 농간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이었고 역으로 비교협 교사들은 옳았었지만 눈물을 삼키면서 학교를 떠나야 했다.

 

2009년 10월15일은 그의 생애 잊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하루가 되었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부성정보고등학교 전교조교사 해임확정판결을 내린 날이다. 이는 바로 한효섭 이사장의 복권 결정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결정이다. 20년의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 그는 한효섭 교장으로 그 자리에 오게 되었다. 사필귀정이라 하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를 위한 싸움과 고통이 얼마나 되는 가는 정작 본인이 아니고서는 헤아리기 어렵다.

 

한글음파이름학으로 얻은 그의 이름은 한효섭이다. 바로 이 이름 속에 사랑과 화해 에너지가 넘쳐나는 음파이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음을 그는 결코 숨기려하지 않는다. 용서와 화해를 선택했기에 지금의 그가 있을 수 있었고 이 길을 선택하도록 한 힘이 바로 이름파동의 에너지 힘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그 자신 스스로 한글음파이름학의 힘을 입증하기 위해 땀과 눈물, 투쟁과 도전으로 점철된 그의 생애를 걸었다라고 밖에 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다. 교육이란 인생의 화해와 용서를 가르치는 힘임을 생각할 때 그의 선택은 당연하고도 필연적이었다.

 

※이글은 허탁(문학박사)님이 추천하면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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